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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샘골 뉴스

서산시대신문 참샘골식품 6차산업 인터뷰 보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참샘골 작성일18-12-01 02:28 조회10회 댓글0건

본문

[인터뷰] 최근명 참샘골식품 대표

기사승인 2018.11.28  10: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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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명 참샘골식품 대표

 

농촌융복합산업 (6차산업) 대한민국 벤처마킹 모델이 되다

“2013년 제1회 6차산업베스트경진대회 ‘대상’...2017년 6차산업 유공발전 ‘대통령’상 수상”

 

<대문을 열며>

6차산업 유공발전 대통령상을 수상(2017년)한 최근명 참샘골식품 대표를 만났다. 최 대표는 이미 2013년 제1회 6차산업 베스트경진대회에서도 대상을 수상한 바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산의 인물이다. “농업에 대해서만큼은 탁월한 재주가 있으십니다”라고 하자, 그는 “부친은 충남 공주에서 공직자 생활을 하면서도 하우스채소개발과 미래농업연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신 분입니다. 무엇보다 미래 농촌에 대한 꿈과 비전을 선명히 제시한 분으로 유명하셨지요. 기자님께서 재주라고 하시니 말씀인데 아마도 저는 부친의 역량을 오롯이 이어받지 않았나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도 저처럼 어떤 품목을 상당히 잘 개발하셨거든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죠.”

그의 뒤로 오목조목 예쁜 미니호박들이 그림처럼 소담스럽게 바구니 안에 앉아있다.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그는 의자를 약간 오른쪽으로 옮겨주며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육군 병장 제대 후 농업에 뛰어들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농업은 저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입니다”라며 환한 웃음을 짓는 최근명 대표. 그의 이야기는 어둠이 내려앉는 것도 잊은 채 이어졌다.

 

# 젊은 총각이 반한 홀스타인 젖소, 꿈으로 가는 길에 만난 첫 번째 손님.

“제 어린 시절에는 홀스타인종 젖소가 무지 귀했습니다. 젖소를 처음 본 것이 군대를 막 제대한 후였어요. 열심히 두 손으로 착유하는 낯선 할아버지를 발견한 순간 눈이 번쩍 뜨였거든요. 용감하게도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어르신에게 달려가 ‘착유한 우유는 어디로 납품합니까? 수지타산은 맞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일손을 멈추며 신기한 듯 젖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저에게 ‘서울우유에서 가져가네. 목축업을 하면서 손자 둘을 남부럽지 않게 가르쳤으니 수지는 어느 정도 맞는다고 봐야지 않겠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며 ‘일반 농업보다 낙농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길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목장을 찾게 되었다. 한 곳은 강원도, 또 다른 곳은 바로 서산의 삼화목장. 부푼 꿈을 안고 가방을 꾸려 운산면에 있는 삼화목장으로 내달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탔는지 모른다. 드디어 꿈을 모아 줄 곳에 당도했고 그는 연수생으로 입사를 할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이론과 실습을 배우며 생활했다. 어느 날은 새벽녘까지 연구를 하다 잠을 놓치는 적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피곤함에 착유를 하다 눈을 뜨고 꾸벅꾸벅 존 적도 있었다. 그래도 소들을 만나면 기운이 솟았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먼저 입사한 선배들 옆에 다가가 귀찮게 질문공세를 하며 목축업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갔다.

그의 나이 24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삼화목장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때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소똥을 황금처럼 사용해라. 그래야 낙농업에 성공할 수 있다.”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3년 동안 창업의 터를 닦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그 결과 기술적인 부분은 완벽하게 마스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목장에 대한 경영은 전혀 몰랐다는 것을 깨닫고 그길로 다시 청암목장으로 이동하여 3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았다.

 

# 젊은 농군, 드디어 ‘참샘골목장’ 경영인이 되다.

당시 한 달 치 월급이 6만 원. 그 돈을 모아 드디어 300만 원을 손에 쥐고 과감히 퇴사를 했다. 그리고 대산면 참샘골에 터를 잡고 우선 젖소 송아지 여섯 마리를 샀다. 젊은 농군이 드디어 기술과 경영이 겸비된 참샘골목장의 주인이 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에는 홀스타인종들이 귀했던 때라 많은 사람들이 젖소를 보러 오기도 했다. 소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하여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사이 순진하고 참한 처자와 결혼도 했다.

“10년 동안 참 잘 나갔어요. 우루과이 라운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그게 터지는데 급물살처럼 외국에서 분유와 우유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 잘 나가던 낙농업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거예요. 3개월 동안 우유를 안 가져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빚이 천정부지로 쌓여요. 눈물을 머금고 고민 고민 끝에 낙농업을 내팽개쳤습니다. 자식은 셋이고 식구들은 모두 저만 바라보고 있죠. 뭘 먹고 살아야 될까 참 암담하대요. 사실 결혼할 때 우리 집사람에게 큰소리 떵떵 쳤습니다. ‘농사지어서 남보란 듯이 당신한테 금여우 은여우 목도리 만들어주겠다.’ 그런데 여우목도리는 커녕 헌 양말 한 짝도 못 사주는 가난한 남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도 순식간에...”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 4전 5기의 삶,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고 일어서기를 반복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어 그는 다시 도전하기 위해 소를 먹이던 2천 평 풀밭에 토종닭을 방사하여 키웠다. 시식회를 열었고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산 닭을 차에 싣고 식당마다 영업을 했다. 정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았다. 그러다 산닭으로는 한계가 있어 참샘골토종닭 브랜드를 걸고 냉동시장에 뛰어들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대형마트를 접수하여 고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업들의 대량 판매와 겨울철 판매저조로 그가 생산한 물량들을 폐기처분해야 했다. 이로써 두 번째 사업 또한 실패, 또 다시 막막한 현실 앞에 선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더는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까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왕우렁이 양식. 종패를 분양하여 번식에 성공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왕우렁이는 사료는 별로 먹지 않고 배추 잎을 더 잘 먹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틈만 나면 서산 동부시장에 들러 배춧잎 주워오는 행복한 일을 했다. ‘참샘골왕우렁이’ 브랜드로 대형마트에 납품 시작, 하지만 생산은 많은데 판매율이 저조하여 또 다시 실패.

마지막으로 마을 작목반을 조성하여 느타리버섯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실 90년대 중반에는 전국적으로 농가 고소득 제배품종으로 정부에서 느타리버섯 재배를 장려하던 때였어요.”

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선진지 농가 견학은 물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교육을 다녔다.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한 결과 드디어 느타리버섯 재배에 성공. 빌렸던 1억 원의 대출금도 갚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소소한 꿈을 다시 꿀 수 있어 행복했다는 최 대표. 하지만 마냥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 오른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대형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때문에 최 대표는 거의 1년 동안을 일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풍년농사가 계속 되는 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러기를 3년가량, 갑자기 버섯 연작피해가 들이닥쳤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버섯들 색깔이 이상하게 되면서 처참하게 쓰러지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환경이 오염되면 그렇게 된다고 하대요. 백방으로 뛰면서 전문가를 찾아다녔어요. ‘농촌 환경이 전체적으로 오염되었다. 이제는 일반 느타리버섯 재배사에서는 키우기가 불가능하고, 대신 첨단 무균재배사에서만 가능하다.’ 그거 만들려면 수중에 5억이란 돈이 있어야한다는데 그 어마어마한 돈이 어디 있습니까. 네 번의 사업으로 이미 물 말아 먹었는데.... 결국 포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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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산업>최근명 씨 부부가 호박을 수학하고 있다.

 

# 한여름 늙은호박에 놀란 그, 다시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가 40대 초반, 무일푼으로 탈탈 손을 털고 나니 그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네 번의 도전과 실패를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가족들 때문이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줄줄이 있는데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요. 생활은 해야 하는데 돈은 없고, 정말 딱 입에 풀칠만 할 정도였습니다. 집사람에게 말하고 서울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아침 일찍 올라갔습니다. 그때 제 차에 마지막 몇 박스의 버섯이 실려 있었어요. 한여름, 가락동시장 한가운데에 들어서는데 저 멀리 누렇고 커다란 호박 몇 덩어리가 쌓여있대요. 깜짝 놀랐습니다. ‘한여름에 저게 바로 금덩이구나. 요새 웬 호박이냐.’ 주인에게 값을 물어보니 ‘호박은 저장이 안되다 보니 썩어버린다. 그래서 여름엔 비싸다’는 겁니다. 당시 금액으로 작은 건 만 원. 큰 건 3만 원. 기자님도 알다시피 가을엔 흔하디흔한 호박이라 얼마나 쌉니까. ‘그래, 저장법을 개발하자. 사계절 잘 저장하면 호박이야말로 돈이 되겠다.’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휘파람을 불며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저를 영문도 모른 채 쳐다보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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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산업>전국 최초로 개발한 호박상온저장실에 맷돌호박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

 

# 6차산업 태동이 된 상온장기저장법

보관법을 고민한 결과 드디어 무릎을 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 옛날 큰집에 가 보면 할머니께서 머슴이 잠자던 사랑방 시렁에 꼭 호박을 열댓 덩어리 얹어 놓은 걸 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그의 머리에 시렁처럼 생긴 느타리버섯 균상(다이)이 생각났다. ‘그곳에 호박을 올리면 절대 썩지 않겠군. 이것이 바로 상온 장기저장법이야.’ “세상을 다 안은 듯 가슴이 벅차 아내에게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가 저를 쳐다보며 ‘호박은 잘 썩어서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저는 이미 다시 희망이 보였던 터라 아내의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리 없었습니다. 정말 신화처럼 나타난 호박이 24시간 저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한마디로 인생역전 스토리가 읽혀지던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6차산업 태동이 된 거대한 프로젝트의 시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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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산업>참샘골식품 직원들이 호박죽 가공상품을 만들고 있다.

 

# 늙은 호박의 저장 성공으로 농업 신지식인 선정

드디어 300평 땅에 첫 삽을 뜨는 순간이 왔다. 늙은 호박을 심기 위해 풀만 무성했던 곳을 다시 파 호박을 심었다. 호박빛깔과 품질 그리고 낙과 발생을 막기 위해 흑백멀칭재배법을 전국 최초로 시도했고, 그 결과 햇빛 차단과 수분유지가 되어 그 어떤 호박보다 생육이 월등이 좋았다. 물론 이 재배법은 그 후, 전국으로 전수되어 대부분의 농가에서 시행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늙은 호박을 심는 사람들은 대부분 논·밭두렁이나 아니면 초가지붕 위에 한 두 포기 심었지 전문적으로 심는 농가는 없던 시절이었다.

그해 가을, 처음으로 수확한 호박이 드디어 저장에 들어갔는데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기술센타 소장님과 선생님들이 오셔서 ‘왜 느타리 균사에서 호박을 저장하냐. 다 섞는다. 절대 하지마라.’ 심지어는 가족들조차도 ‘늙은 호박은 저장이 안 된다’고 말리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묵묵히 제 뜻을 굽히지 않고 저장을 했습니다.”

첫해는 남들이 걱정한대로 이듬해 1월, 대부분 썩어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그 결과 느타리버섯 균사동이다 보니 습도 때문이란 해답을 얻게 되었다. 환기가 그 대안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온도와 습도만 맞춰주면 무난할 것이란 것에 착안하고 그때부터 온돌방에서 또는 균사동에서 실험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을 매개체로 2001년도 단국대학교 최고경영자수업에서 논문발표를 했고 우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 후 착안에 착안을 거듭한 결과 농업산업개발부문 신지식인에 선정되어 서산시민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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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산업>호박죽 상품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이 호박을 손질하고 있다.

 

# 기적은 뜻하지 않은 날 문득 찾아왔다. 크리스마스이브, 드디어 꿈에 그리던 호박 주문이 들어왔다.

2000년대 정보화시대가 도래하면서 정부에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심지어는 농민에 이르기까지 정보화시대에 적응하라. 온라인으로 파는 시대가 온다. 어떤 작목인지만 알려주면 홈페이지는 국가에서 해주겠다”고 선포했다. 그는 말한다. “어떻게 포장해서 상품으로는 어떻게 팔 것인가까지 아주 세밀하게 만들어 보냈더니 오케이 하더군요. 호박처럼 무거운 제품을 온라인 공간에서 사진 한 컷으로 소비자가 방안에서 산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드디어 농촌진흥청 제1호로 저희 ‘참샘골 호박농원’ 홈페이지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호박이 잘 팔렸을까요? 그때만 해도 컴퓨터 보급이 잘 안되던 시절이었고, 무엇보다 온라인에 눈 뜬 사람들도 거의 전무했던 시절 아니겠습니까. (홈페이지)보는 사람도 더구나 (물건)사는 사람도 없는 홈페이지에 불과했습니다. 비워둘 수 없어 그때부터 호박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요. 하루하루 시간이 가다보니 열 명 정도가 접속을 하더군요. 하지만 호박을 사겠다는 사람은 1년 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뜻하지 않은 날 문득 찾아왔다.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1시, 드디어 꿈에 그리던 호박 주문이 들어왔다. 너무 놀라 눈을 비비며 몇 번이나 컴퓨터 화면을 쳐다봤는지 모른다. 그날의 감격을 어떻게 다 말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희열 그 자체였다. 그때 생각했다. ‘10년 후 온라인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커지겠다.’ 보통은 무거운 호박을 트럭에 싣고 가락동으로 가서 파는데 이건 가만히 앉아 모니터에서 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어느 여고생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2차산업 호박즙 탄생

호박즙 출시는 우연한 기회에 얻어진 수확이었다. 최 대표의 홈페이지에는 그동안 호박만 파는 것으로 운영되었는데 어느 날 여고생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호박 사장님, 왜 호박만 파십니까? 무거운 호박을 사서 집에서 즙을 내리려니 너무 힘듭니다. 이것을 상품으로 만들어주세요.” 머리가 아찔했던 최 대표는 그길로 호박을 싣고 건강원을 찾았다. 여고생 글에 착안하여 ‘참샘골호박미인즙’이 탄생되었다. 그 당시 글 속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호박 많이 먹고 미인 되고 싶어요.’ 당장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제법 쏠쏠하게 잘 팔려 건강원 대여섯 곳으로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무지는 고난을 좌초한다는 말이 있든가. 정부에서 만들어 준 홈페이지는 1차산업 제품만 해당되었던 것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홈페이지만 만들어주었지 교육을 시켜주지 않았던 터라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6개월쯤 뒤인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제조업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두명령이 떨어졌고 당시 돈으로 벌금 2백만 원을 맞았다. 억울했지만 ‘가공산업 창업수수료’라 생각하며 억울함을 달랬다. 덕분에 그는 서산 최초로 식품제조허가를 획득했고 벌써 횟수로만 16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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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산업>회포마을에 체험관광객들이 몰려 오고 있다.

 

# 여성동아 11월 호는 보물1호, 풍성한 저장실이 효자노릇

홈페이지가 언론에 뜨게 된 것은 2001년도 가을. 그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대박사건이 일어났다. 여성동아 장옥경 작가가 홈페이지를 보고 그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사장님 풍성한 가을이라 호박을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언론이라곤 단 한 번도 타 본적 없던 참샘골 호박농원이 그해 11월, 화려한 사진과 함께 전국 서점에 놓여지게 되었다. 당시 여성동아는 최고의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잡지책이었기에 그의 농장 전화는 접속이 다운 될 정도로 폭주를 했고, 그 덕택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마비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때부터 방송에서는 최 대표의 농장이 연일 시청률을 올리는 효자 프로가 되었고, 최 대표에게는 참샘골 호박농원이란 브랜드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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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산업>회포마을 체험관에서 관광객들이 호박피자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 1차산업에서 6차산업까지 아우르는 호박명인 최 대표.

이제 참샘골 호박농원 덕택에 최 대표가 사는 회포마을은 농촌체험관광마을이 되었다. “2000년도에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렸습니다. 가까우니까 서울 경기권에서 홈페이지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오더군요. 시작은 비록 호박이었지만 이제는 호박을 넘어 저희 마을까지 떠올랐습니다. 팜스테이마을, 정보화마을, 농촌체험휴양마을, 1년에 관광객만 5~6천명 옵니다. 수많은 체험객들에게 우리는 여러 가지 전통요리체험과 벼 수확 농경문화체험, 자연천연체험 등 15개 프로그램으로 재미와 행복을 주지요. 특히 마을홈페이지와 쇼핑몰 운영으로 1차산업과 3차산업으로 연계한 마을 소득 창출의 모델링 마을이 되었습니다.”

2013년 그의 마을은 농촌융복합산업(6차산업)이 시작되었고 시작과 동시에 전국 60개 업체중 제1회 베스트 경진대회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나아가 2017년 12월에는 농촌융복합산업보고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 호박에 관한 지속적인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그의 계획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이제 6차를 넘어 4차산업혁명시대가 도래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빅테이터시대인 만큼 호박관련 데이터들을 지속적으로 축적할 계획이에요. 이미지, 요리프로그램, 고객의 취향 등 모든 데이터들을 관리해 가야 4차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모바일 4천만 시대입니다. 모든 것들이 모바일 하나로 해결되는 시대니만큼 철저한 준비를 하여 고객의 구미에 맞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저희 참샘골 호박농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미향 기자 vmfms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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